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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획 보도] 극지연구소 20년, 미지의 세계에 새겨진 위대한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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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속 화학반응이 지구온난화 속도 늦춘다

[문화뉴스 엄민용 기자]  기후변화를 넘어 기후위기가 현실이 돼 가고 있는 지금, 기후변화가 시작되는 출발점이자 그 여파가 가장 극적으로 나타나는 종착역으로 극지가 주목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1988년 남극세종과학기지를 건설하면서 극지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후 북극다산과학기지,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남극장보고과학기지 등 연구 기반과 거점을 넓혀 가며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이런 가운데 올해는 극지 연구의 중심인 극지연구소가 설립된 지 20년이 되는 해다. 이에 그동안 우리나라 극지인들이 열정과 땀으로 거둔 어제의 성과들을 되돌아보며 미래의 숙제들을 정리해 본다. <편집자 주>

지구온난화로 남극과 북극의 얼음 녹는 속도가 계속 빨라지고 있다는 걱정스러운 뉴스가 연일 전해지고 있다. 무려 1초에 원자폭탄 4개, 1시간에 1만 4400개씩을 터트리는 만큼의 에너지가 전 세계 바다에 흡수되고 있다고 할 정도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로 녹아내리고 있는 남·북극의 얼음은 놀랍게도 자정 작용을 통해 거꾸로 온난화를 늦추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극지연구소 김기태 선임연구원 연구팀은 극지방의 얼음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의 원리를 밝혀내고, 이로 인해 지구온난화의 속도가 늦춰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최원용 포스텍 환경공학부 교수 연구팀과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UST), 한림대, 스페인 물리화학연구소도 함께 연구에 참여했다. 연구 결과는 환경 분야 국제 학술지 <환경 과학 기술(Environmental Science & Technology)>의 해당 월 대표 표지 논문으로 선정됐다.

작은 영웅의 반란, 미세조류의 지구 정화
미세조류란 단세포 형태의 작은 식물성 플랑크톤으로, 강이나 바다에서 광합성을 하며 살아간다. 너무 작아 인간의 눈으로는 모양새를 볼 수 없을 정도여서, 평소 미세조류의 존재를 깨닫기는 쉽지 않다. 개체별로 보면 너무나 보잘것없어 언뜻 우리의 삶과 별로 관련이 없는 듯하지만, 사실 미세조류는 지구에서 가장 중요한 식물로 불린다. 진짜 식물처럼 뿌리나 줄기가 없음에도 지구 대기 중 산소의 50%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사실 미세조류는 지구의 생성 당시부터 광합성을 통해 지구에 산소를 생산·공급하며 수없이 많은 새 생명체를 탄생시킨 주역이다. 자기 몸집의 2배 이상이나 되는 이산화탄소를 저장하는 능력이 있고, 광합성을 통해 물·이산화탄소·질소·인을 유기물로 전환하기도 한다. 백악기 시절에는 수억 년 전 땅속에 묻힌 미세조류가 고온, 고압, 긴 시간을 통해 변형되며 우리가 연료로 쓰는 연유를 만들기도 했다. 또 해양생물 먹이사슬의 기초생산자가 돼 우리에게 큰 영향력을 미친다. 중요한 기초자원이자 의료용 약품, 식품 개발 원료로도 주목받는 등 앞으로도 지구 환경에서 미세조류의 역할과 가능성은 무한에 가깝다.

북극과 남극 바다에도 미세조류가 있긴 하지만, 극지방 바다는 다른 바다와 비교해서 미세조류의 생성이 떨어진다. 이런 경우 철 이온이 미세조류의 생산활동을 활성화하고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잡아두는 역할을 하지만, 자연계에 있는 철 성분은 대부분 산소와 결합된 산화철 형태로 존재해 미세조류의 활동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극지연구소를 비롯한 공동연구팀이 해당 연구를 통해 극지방의 얼음에서 미세조류의 성장을 돕는 철 이온이 방출되는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저온 광학현미경으로 관찰한 얼음결정과 얼음결정 사이의 준액체층 사진.(사진 극지연구소)
저온 광학현미경으로 관찰한 얼음결정과 얼음결정 사이의 준액체층 사진.(사진 극지연구소)

 

스스로 열을 식히는 극지의 신비
연구팀은 9월부터 시작돼 얼음이 녹기 시작하는 남극의 봄철에 장보고과학기지 앞 로스해에서 미세조류가 번성하는 현상에 주목했다. 연구팀은 얼음이 녹는 현상과 미세조류의 번성 사이에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연구를 통해 극지방의 얼음은 산화철을 철 이온으로 바꾸는 화학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이 밝혀졌다. 액상에서는 산화철이 철 이온으로 바뀌는 화학반응이 잘 일어나지 않는데, 얼음에서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 배까지도 철 이온으로 바뀌는 화학반응이 일어나고 있었다. 연구팀은 이런 현상의 원인으로 동결농축 효과를 꼽았다. 보통 온도가 낮으면 화학반응이 느릴 거라고 생각하지만, 동결농축 효과는 이와는 반대되는 현상이다. 물이 얼음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특정 성분들이 얼음 결정 사이 완전히 얼지 않은 유사액체층으로 모이면서 해당 성분의 농도가 수천에서 수십만 배 증가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유사액체층에서 산화철이 철 이온으로 변하는 화학반응이 빠르게 일어나면서 철 이온이 방출되는 현상을 확인했다. 이온화된 철은 식물의 성장에 매우 유익하기 때문에 극지 미세조류가 최대 수만 배까지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됐다.

얼음결정 주위의 화학반응은 철 이온과 함께 요오드 가스를 생산하는 것 또한 확인됐다. 요오드 가스는 구름 생성을 촉진하는 미세입자를 형성하기 때문에, 많이 발생할 경우 구름이 생겨 태양빛을 차단하게 된다. 철 이온과 요오드 가스의 방출 실험 결과는 겨울철 국내와 남극세종과학기지 등 실제 자연 현장에서 검증 절차를 거쳤으며, 빛이 없을 때도 얼음의 화학반응이 확인됨에 따라 고위도 지방의 극야 기간에도 동일한 반응이 나타날 것으로 추정된다.

얼음에서 일어나는 특이한 화학반응에 의해 6가크롬은 제거되고, 요오드화물은 산업에서 활용 가능한 요오드 분자로 전환됨.(사진 극지연구소)
얼음에서 일어나는 특이한 화학반응에 의해 6가크롬은 제거되고, 요오드화물은 산업에서 활용 가능한 요오드 분자로 전환됨.(사진 극지연구소)

 

그뿐만이 아니었다. 극지의 미세조류는 광합성을 하며 디메틸황(DMS)이라는 가스 상태의 황 성분을 내뿜는다. 철 이온 증가로 극지의 미세조류가 늘어나게 되면서 극지의 디메틸황 방출량도 함께 증가하고 있는 것이 2021년 연구에서 확인됐다. 디메틸황은 산화 반응을 거쳐 나노미터 크기의 작은 입자가 돼 대기로 퍼져나간 다음, 대기 중의 수증기나 대기 물질을 잡아당겨 구름을 만들어 내는 구름 응결핵이 된다. 대기 중에 더 많은 디메틸황이 퍼질수록 구름도 늘어나 태양열을 막아주는 자연 차단막이 되는 것이다. 극지연구소 연구팀은 제플린 감시소와 함께 디메틸황을 정밀하게 관측하는 장비를 자체 제작해 디메틸황이 구름 입자를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입증했고, 연구 논문은 국제학술지 <지구 생물 지질화학적 순환>에 실렸다.

극지연구소 얼음화학연구 프로젝트.(사진 극지연구소)
극지연구소 얼음화학연구 프로젝트.(사진 극지연구소)

자정 작용 중인 지구, 우리도 도와야 한다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처럼 스스로 자정 작용을 하며 온난화를 늦추고 안정적인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극지방 얼음에서 나타나는 현상만으로는 지금처럼 빠른 지구온난화를 막기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기후변화가 불러올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최대한 온난화를 막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극지의 해양·대기·빙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이해하기 위한 연구를 지속해야 한다. 최선을 다하고 있는 지구를 위해, 우리도 연구를 확대하고 지구의 자정 작용을 도울 방안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극지연구소의 역할이 앞으로 더욱 중요한 이유다.

 

출처: 문화뉴스 / 엄민용 기자 margeul@mhnse.com